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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of My Life/Digilog

[디지로그시대가온다] 22. 몸으로 돌아오라 - 신체와 문명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수신제가(修身齊家)라고 하면 귀를 막던 젊은이들도 몸짱.얼짱이라고 하면 금시 반색을 할 것이다. 신(身)은 몸이고 가(家)는 집이니 몸집 좋다는 말이나 몸짱이나 크게 다른 것이 없다. 다만 수신에서는 몸이 하나인데 젊은이들이 말하는 얼짱과 몸짱은 별개처럼 둘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몸 위에 붙은 수(修)라는 한자말도 쉬운 한자가 아니다. 한정된 지면에서 그것을 풀이하자면 아무래도 로마시대 평민의 반란군을 설득하기 위해 파견됐던 아그리파의 우화를 빌려오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먹고 놀기만 하는 위(胃)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킨 손.입.이빨 같은 신체의 구성원들에 대한 이야기다. 위를 굶겨서 굴복시키려고 그들은 서로 짜고 아무 음식도 제공하지 않았다. 하지만 위를 굶길수록 자신들의 힘도 점점 빠져 쇠약해졌다. 그제야 그들은 위의 기능을 깨닫고 그 뒤부터 '한 몸'이 되어 열심히 일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기계문명은 아그리파의 우화에서처럼 몸이 해체돼 제각기 따로 노는 상태를 초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기계까지 안 가더라도 우리가 입고 있는 의상 자체가 실은 상체와 하체로 분할된 신체 의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셸 셰르의 표현대로 하자면 의상은 일종의 신체지도(身體地圖)다. 자연의 대지(大地)를 소유권에 의해 찢어 무수한 경계선으로 분할한 지적도(地籍圖)와도 같다.

인체의 감각도 미디어의 성격에 의해 흩어지고 분할된다. 음악 감상실에 들어가면 눈을 감고, 도서관에 들어가면 귀를 막는다. 시각문화와 청각문화는 판이하게 차별된다.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로 시청각을 통합한 새로운 멀티미디어 문화가 생겨나고 있지만 여전히 촉각.후각, 그리고 미각의 세계는 배제돼 있다. 그래서 질서 정밀, 그리고 직선적인 것을 추구하는 시각 편중의 환경에서 살아온 현대인들은 후각의 80%를 상실했다고 말한다. 제러미 리프킨의 증언이다.

그런데 수(修)는 다스린다, 고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현대적으로 풀이하면 수신이란 반란으로 흩어지고 동강 난 몸들의 구성원을 아그리파의 우화처럼 '위'의 역할로 재통합해 다스리는 것과 같다. 한국말의 신체어가 다른 나라 말과 다른 것은 '머리' '허리' '다리'처럼 인체를 상.중.하로 3분할하고 있으면서도 '리'자 '항렬'로 연결하고 있다. 머리와 손과 발에서 갈라진 것들이 머리카락이요, 손가락이요, 발가락이다. 다른 나라 말과 비교해 보면 우리의 신체어가 얼마나 통합적인 의식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감각에 있어서도 "꽃이 피고 새가 우는"의 대중가요에서처럼 눈과 귀를 나란히 짝 지어 어우르는 경우가 많고 꽃구경을 가도 눈만 아니라 반드시 음식을 함께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어금니 정보 문화(1회 참조)도 그렇다. 꽃구경하는 사람보다 먹는 사람이 더 많은 그 불가사의한 광경은 바로 시각과 미각을 융합하는 공감각의 특성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후각 역시 유불선 3교에 두루 통한다. 향도(香徒)의 전통만이 아니라 한국의 제사 문화를 상징하는 것이 향화(香火)이고, 그것은 제주(祭酒)를 올리고 제사 음식을 음복하는 미각 문화와 융합해 이승과 저승을 잇는 미디어의 역할을 한다.

디지털 기술의 가장 큰 성과는 산업혁명 이후 제각기 흩어진 신체감각을 멀티미디어에 의해 통합시킨 점이다. 그러나 MP3로 압축된 디지털 음악을 유원지의 호러물 효과음으로 쓸 경우 아이들의 공포감이 떨어진다는 보고처럼 디지털 정보의 약점은 여전히 그 신체성을 드러낸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이 시대의 부름 소리는 "몸으로 돌아오라"는 새로운 수신의 '몸집' 문화다. 그래야만 디지털 정보는 시청각 편중에서 어금니로 씹는 통합적인 '위'의 정보 문화로 발전한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짜 '몸짱'문화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24 20:22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