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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of My Life/Digilog

[디지로그시대가온다] 2. 시루떡 돌리기 정 담은 정보 원리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전화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한국인들은 시루떡을 돌리는 방법으로 온 동네에 정보를 알렸다. 디지털 정보는 컴퓨터 칩을 타고 오지만 시루떡 아날로그 정보는 꼬불꼬불한 논두렁길을 타고 온다. 그래서 그것은 화려한 106화음이나 음침한 진동음으로 울리는 휴대전화 소리와는 다른 정취가 있다. 먼 데서 짖던 동네 개들의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다가 사립문 여는 소리로 바뀌면 시루떡에 실려 온 정보가 방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면 사람들은 으레 "이게 웬 떡이냐" 고 외친다. 시루떡 정보 발신은 언제나 이렇게 놀라움과 궁금증을 동반한다. 떡 자체가 벌써 밥의 일상성에서 벗어난 음식이기 때문이다. 돌떡이든 고사떡이든 그것이 지니고 있는 일탈성과 의외성은 정보의 전달력과 호소력을 몇 배나 더 강력하게 한다.

그렇다. 누가 컴퓨터 앞에서 "이게 웬 e-메일이야"라고 외치겠는가. 우리를 짜증스럽게 하는 스팸(쓰레기) 메일처럼 놀라움과 충격이 없는 정보는 이미 죽은 정보다. 그래서 의외성과 궁금증이야말로 시루떡 정보 원리의 첫 단추다.

"웬 떡이냐"라는 말은 의문형 감탄사다. 당연히 "돌떡이다" "고사떡이다"라는 대답이 뒤따르게 된다. 그래서 돌떡을 먹는 사람은 "아니 그 녀석이 벌써 그렇게 컸어!"라고 말하고 고사떡을 먹을 때에는 "누가 편찮으신가"라는 이야기들이 오간다. 이렇게 시루떡 정보는 독자적으로 증식되고 증폭되어 교감의 밀도와 참여도를 높여준다.

또한 손으로 만지고 이로 씹을 수 있는 시루떡 정보는 디지털 미디어로는 불가능한 촉각과 미각을 이용한 것이다. 먹는 미각소(味覺素)와 말하는 정보소(情報素)가 하나로 결합된 떡 돌림의 둘째 단추는 정보의 참여성이 만들어내는 공동체적 의식이며 셋째 단추는 시청각 중심의 현대 미디어가 할 수 없는 후각.촉각.미각을 통합한 어금니 미디어라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인터넷처럼 분산형으로 되어 있다. 동네 사람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는 방법이 아니라 한 집 한 집 떡을 돌려 각자가 제자리에서 정보를 수용하게 한다. 그리고 돌떡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빈 그릇을 그냥 돌려보내는 법이 없으니 정보의 쌍방향성까지 겸하고 있다. 분산성과 상호 의존성이 시루떡 정보의 넷째 단추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情)이라는 정보 원리다. 정보란 말 속에는 이미 정이란 말이 들어 있다. 맥루한의 핫 미디어와 쿨 미디어는 또 다른 개념으로서 모든 정보에는 온도가 있다. 가령 같은 정보라도 동네방네 우리 애가 돌이 되었다고 떠들고 다니면 오히려 빈축을 산다.

하지만 김이 무럭무럭 나는 맛있는 시루떡에 정의 온도를 실어 보내면 동네 전체로 퍼진다. 그것이 정보 문명의 방향을 결정하는 마지막 단추 '정의 원리'다.



썰렁하고 살벌한 인터넷 게시판의 댓글만을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내용과 관계없이 종이에 쓴 편지 글과 액정 모니터에 찍힌 e-메일은 커다란 온도 차를 보인다. 음악도 그래픽도 디지털 정보는 차갑다는 데 그 장벽이 있다. 개 짖는 소리도 잠잠해지면 시루떡에 실려 온 작고 반짝이는 정보들은 초가지붕에 내리는 눈처럼 온 동네를 하얗게 덮는다.

이 아날로그 공동체의 행복했던 기억을 어떻게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미디어의 액정판에 싣느냐 하는 것이 디지로그 시대의 중요 과제다. 시루떡 돌리기의 다섯째 단추! 그것을 오늘의 정보 미디어에 담는 전략에 성공하면 정치.경제.사회와 그 공동체 문화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다음 회는 '정(情), 그것이 진짜 젓가락 기술'입니다

2006.01.01 19:43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