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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of My Life/Digilog

[디지로그시대가온다] 30회 시리즈를 마치며 "디지로그 시대가 온다. 디지털 강국서 한 발짝 더…한국문화와 융합하라"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
30회 시리즈를 마치며> 이어령 본사 고문의 `키워드 풀이`

'디지로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합친 말이다. '디지로그'는 단편적인 기술용어가 아닌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다.

신년 시리즈 '디지로그 시대가 온다' 30회를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끝낸 본사 이어령 고문을 만났다. 독자에게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던 미진한 부분들을 알아보는 자리였다. 연재된 글에는 아직 낯선 개념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고문은 "신년 덕담을 글로 풀어 쓴 것일 뿐"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새로운 개념과 지식을 추가했다. 그것은 앞으로 책을 통해 정리될 수밖에 없으리라.

 
 중앙일보 이어령 고문
[사진=최정동 기자]
-우선, 연재를 끝내신 소감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신년 덕담을 글로 쓴 것뿐인데요. 덕담이란 원래 나이 든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까. 자연히 비판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풀어야 할 과제를, 그리고 과거사가 아니라 앞날의 성취를 이룰 수 있는 희망의 화두를 내놔야겠지요. 이런 성격에 맞춰 덕담을 하다 보니 복(福)이란 말이 '디지로그'란 용어로 요약된 것이지요."

-디지털이니 아날로그니 하는 말도 쉽지 않은데 그것을 한데 합친 '디지로그'는 더욱 어렵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럴 겁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되풀이하면서도 막상 덕(德)이란 말이 무엇인지 복의 뜻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쓰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디지로그란 말도 복이니 덕이니 하는 말처럼 자꾸 쓰다 보면 장독의 묵은 장맛처럼 몸에 배게 되겠지요."

-벌써 디지로그란 말이 시중에서 많이 퍼져 있는데요. 아직은 첨단기술 제품에 옛날 감성을 담은 상품이라는 마케팅 용어로 주로 쓰이는 듯합니다. 기업체의 큰 연구소나 성인교육기관 같은 데서 키워드로 내세우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요.

"모든 용어는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 낮은 의미와 높은 의미를 지니기 마련입니다. 특히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전자공학의 기술용어에서 시작해 일상적인 비유적 표현, 그리고 문학이나 철학적 개념어로 조금씩 다른 의미로 쓰입니다. 그것을 모두 아우른 포괄적 개념이니 마케팅 용어로 사용해도 나쁠 것 없습니다."

-디지로그처럼 개념이 다르거나 대립된 뜻을 한데 합쳐 쓰는 혼성어들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공부와 놀이는 정반대 현상인데 요즘에는 둘을 합쳐 에듀테인먼트라고 하지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최근 작고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이 1968년 미국 뉴욕에서 발표한 설치작품 'TV 부처'. 동양과 서양, 과학기술과 명상의 세계, 인간화된 예술 등의 요소를 복합적으로 담고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아우르는 디지로그의 이념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그런 혼성어를 외국에서는 포트만토 (portmanteau)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연기와 안개는 독립된 말이었지만 공해로 이 두 개가 합쳐지는 현상이 일자 스모그(smoke+fog)란 혼성어가 생겨났어요. 디지털 기술이 처음 나오자 디지털 혁명이라는 말이 만들어지고 그것만 있으면 아날로그의 기술이나 물질로 못하던 일을 다 할 수 있다고 믿었지요. 하지만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말처럼 디지털만으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디지털 기술이 성숙해질수록 아날로그의 기술과 감성이 있어야 된다는 의식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래서 '후기 정보사회를 향하여'라는 부제를 붙이신 거군요.

"그렇지요. 컴퓨터 인터넷이 생기던 초기 정보화 사회와는 그 환경이 몰라볼 정도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우선 인터넷의 역기능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각종 전자제품을 비롯해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학.사회.문화 전반에, 심지어 정치 분야에서도 디지털적인 1과 0의 이항대립적 사고의 틀이 깨지기 시작합니다. '좌파도 우파도 없는 새 정치세계'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마는 시카고대 테니 클라크 교수는 20년 동안 20여 개국에서 얻은 구체적인 데이터들을 조사분석한 결과 기존 정치풍토와는 달리 좌파.우파로 가를 수 없는 새 정치의 징후가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지요."

 
 ◆디지로그 문화의 상징 '아노토펜'=스웨덴의 아노토사가 개발한 특수펜. 펜촉 옆에 달린 카메라 센서가 종이위의 아날로그 글씨를 인식해 컴퓨터로 전송한다. 24회 '아노토 펜이 붓 문화 살린다' <본지 1월 27일자 3면> .
 
-정치 말고 우리의 피부감각에 직접 와닿는 디지로그 현상으로 전자제품이나 기업 모델을 든다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소니가 신개념 컴퓨터로 판매한 바이오(vaio)시리즈입니다. 비주얼과 오디오를 나타내는 앞의 VA자는 아날로그의 파상곡선으로 그려져 있고 끝의 아이오(IO)는 디지털의 1과 0으로 디자인돼 있는 그 로고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융합된 세계를 지향하는 소니의 정신을 나타낸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요즘 '아이 제너레이션'이란 말에 불을 붙인 애플사의 '아이팟'(iPOD) 휴대 음악 플레이어도 넓은 개념으로 보면 디지로그 증후군의 하나라고 할 수 있어요. 종래의 워크맨 같은 아날로그적 환경과 인터넷상의 냅스터나 소리바다와 같은 음악 공유 사이트의 디지털 환경을 뛰어넘어 저작권 문제까지도 일거에 해소했으니까요."

-마이크로소프트사와 같은 거대기업이 애플의 디지로그적 발상에 일격을 당한 거군요. 그런데 방금 디자인이라고 하셨는데 그것도 디지로그와 관련이 있나요.

"디자인은 디지로그 파워의 핵심이지요. 디지로그 마케팅은 모두 디자인의 의식과 감각에서 나옵니다. 서양의 종은 안에서 쳐서 밖으로 울리도록 되어 있고, 한국(동양)의 범종은 밖에서 쳐서 안에서 울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장식적 차이가 아니라 문화와 종교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인간(아날로그)과 컴퓨터(디지털)의 접촉면을 인터페이스라고 하는데 디자인은 바로 인간과 물건 사이를 연결해 주는 인터페이스를 만들어주는 파워입니다. 길이 나쁘면 왕래가 어려워지듯이 쓰기 힘들고 정이 안 붙는 디자인은 사람의 마음을 끌지 못합니다. 그래서 산업시대의 3D는 모두들 피했지만 오늘의 Digital.DNA.Design의 3D에는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디지털은 숫자의 세계이고, 아날로그는 말의 세계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융합하는 사고를 하신 거군요.

"사실은 언어도 좌뇌 기능에 속하는 것으로 선과 악, 생과 사 등 디지털적인 대립항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숫자와 비교할 때에는 아날로그를 대표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슈펭글러는 '서구의 몰락'에서 언어는 문화, 숫자는 문명을 만드는 것으로 보았으며 '1984년'의 미래소설을 쓴 조지 오웰은 문명의 종말과 인간의 위기를 언어가 숫자로 바뀌는 그 파괴 과정을 통해서 보여주었지요. 나를 대신하는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각종 자격증과 카드 번호는 모두가 디지털적 세계의 숫자로 돼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죄수처럼 숫자로 호명되는 감옥 속에서 살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하의 감옥에서 한 시인이 자신의 죄수번호 264번을 언어로 컨버전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광야'의 시인 이육사(李陸史)의 필명입니다. 386세대를 원래의 숫자적 의미와는 달리 3.1절과 8.15와 6.25를 모르는 세대라고 한다든지, 펜티엄 시대의 386 컴퓨터라고 패러디화하는 것도 일종의 숫자의 언어화입니다. 그리고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9.11 역시 점을 빼면 911로 미국의 구급 비상전화 번호가 됩니다. 이를 뒤집으면 11.9가 되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이 되지요. 언어를 숫자화하는 것이 디지털 문화라면 이육사의 경우처럼 숫자를 언어로 컨버전하는 것이 디지로그 문화의 징후군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노토 펜(그림 참조)이 보급되면 그것으로 직접 원고를 쓰시겠습니까.

"내 생전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이브리드 카도, 아노토 펜도 아직은 일찍 찾아온 한 마리 제비일 뿐입니다. 아무리 속도가 빠른 세상이라고 해도 컴퓨터가 광대역 고속통신망과 연결되는 데는 반세기 이상 걸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연잎 현상'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연못을 반쯤 덮었던 연잎이 그 연못 전체를 다 덮는 날은 바로 그 다음날이라는 비유이지요. 주전자의 물이 99도가 되어도 끓지 않다가 마지막 1도에서 갑자기 끓는 것과 같아요. 상품도, 비즈니스 모델도, 사회현상도, 정치나 이념도 어떤 임계점에 달하면 눈 깜작할 사이에 연잎현상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지금은 작은 징후이지만 디지로그 현상도 어느 땐가는 폭발적으로 퍼질 때가 올 것입니다."

-끝으로 한 말씀 더 듣고 싶습니다. 뗏목을 버리라는 말로 시리즈 끝맺음을 하셨는데요.

"한국 사람들은 꼭 뒤풀이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기지요. 이차.삼차까지는 가야(웃음). 종소리도 그냥 울리는 것이 아니라 나부끼는 옷고름 자락처럼 여운이 깁니다. 뒤풀이 문화의 아날로그 심성이야말로 빡빡한 디지털 문화를 푸는 치료제지요. 그러나 자전거 기술로 비행기를 만드는 데 성공한(6회 참조) 라이트 형제는 그 기술을 버리지 못해 결국은 비행기를 새로 개발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버릴 때가 되면 버려야 하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문에 하루하루 바삐 쓰다 보니 출전을 일일이 밝히지 못했고 미처 고치지 못한 오류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다듬고 보충해 한 권의 책으로 묶는 것이 제가 뗏목을 버리는 날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미운 사람도 뒷모습을 보면 용서할 수 있지요.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들을 죄악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 지상에는 우리보다 잘 사는 사람이 많지만 남의 가슴에 못질하지 않고, 피눈물 흘리지 않게 하고 이만큼 사는 대한민국 같은 나라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세요. 우리가 남겨두고 가는 뗏목이 삐걱거린다고 탓하지 말고 두 손으로 불끈 그 키를 잡으세요. 물에 떠내려가지 않으면 분명 한국인은 디지로그 시대를 앞장서 갈 것입니다."

대담 글=조현욱 문화·스포츠 부문 부에디터 <poemlove@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2.05 19:51 입력 / 2006.04.08 00:33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