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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of My Life/Digilog

[디지로그시대가온다] 3. 젓가락 기술의 바탕은 RT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문자 그대로 읽으면 정(情)을 알리는 것이 정보(情報)다. 하지만 영어의 인포메이션이나 중국어의 신식(信息)에는 정이라는 뜻이 없다. 정보기술(IT) 역시 정과는 먼 전쟁의 산물이었다. 최초의 컴퓨터 애니악은 탄도(彈道) 계산을 하려고 미군 발주로 만든 것이고, 초기의 인터넷 아파넷(Arpanet)은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컴퓨터 시스템을 분산 보호하기 위해 구축한 미국의 군사용 네트워크였다.

'정보'란 말도 실은 적정보고(敵情報告)를 줄인 말이다. 개화기의 일본인들이 프랑스의 보병훈련교본을 번역할 때 만든 말로 젓가락 기술의 정과는 그 뜻이 다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소댕 보고 놀란다'는 말처럼 또 그 젓가락 기술이냐고 진저리칠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은 젓가락 기술을 콩을 집어 먹는 손재주로 안 것부터가 잘못된 생각이다. 젓가락이 IT.BT(생명공학)시대에서 평가될 수 있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손재주가 아니라 머리와 마음속에서 생긴 정(情)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백 가지 천 가지 이유에 앞서 젓가락은 모든 음식을 한입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요리를 만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약 비프스테이크처럼 덩어리째 음식을 놓았다면 우린들 별수 있었겠는가. 양식의 경우처럼 부엌에 있는 도마와 식칼이 각자의 테이블 위로 나앉아야 할 것이다. 한입에 들어가도록 음식물을 잘게 저며 주는 마음 그것이 바로 정이란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정은 기계나 물질을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느끼고 헤아리는 '관계기술'(Relation Technology)을 낳는다.

"한국인은 한 손으로 먹고 양인(洋人)은 양손으로 먹는다"는 농담이 있듯이 서양 사람들은 포크.나이프로 식사를 한다. 음식을 만든 사람과 먹는 사람의 관계는 단절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창이요, 칼이다. 실제로 9.11테러 사건 이후 포크.나이프는 항공여객의 휴대품 금지목록에 올랐다. 하지만 술좌석의 젓가락 장단에서 보듯이 젓가락은 신나는 악기가 된다.

활에서 하프가 생겨난 것처럼 나폴레옹이 현상금까지 내걸고 개발한 통조림은 오늘날 수퍼마켓의 일상 식품이 되었고, 군사용으로 닦은 길은 자동차 경주용 트랙으로 변했다.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사람을 즐겁게 하는 악기로 반전시키는 것. 그것이 기술문명의 방향이요, 희망이다. 빌 게이츠가 나폴레옹과 닮은꼴이라는 BBC방송의 분석처럼 전쟁기술이 낳은 IT는 아직도 비정하고 공격적인 피비린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정(無情)을 유정(有情)으로, IT(정보기술)를 RT(관계기술)로, 디지털을 디지로그로 문명의 그 큰 흐름을 바꿔놓는 새 물결이 지금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이어령 중앙일보사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02 19:40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