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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of My Life/Digilog

[디지로그시대가온다] 6. 자전거의 균형이 비행기 '원천기술'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사람은 절대로 자기 몸무게보다 무거운 엔진을 달고 하늘을 날 수 없다고 미국의 뉴컴 교수가 선언한 것은 1900년의 일이다. 우주물리학의 권위자 스미스소니언연구소의 총재 랑그레가 정부의 지원 아래 제작한 그레이트 에어드롬기가 포토맥 강물 속으로 추락해버린 것은 1903년 12월 10일의 일이다.

그러나 바로 7일 뒤 오하이오주 디튼에 사는 자전거 제조업자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날고 말았다. 키티호크의 모래사장에서 프라이어 호는 12초 동안 17m를 분명히 활공 아닌 비행을 한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많은 사람은 최고의 수리학이나 우주물리학으로도 못 해낸 것을 무명의 시골 자전거 점포의 라이트 형제가 발명한 의미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누구나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느끼는 것은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자전거의 기본기술이라는 점이다. 자전거가 두 바퀴로 굴러가려면 그 밸런스를 컨트롤할 수 있는 핸들과 페달 장치가 있어야 한다. 네 바퀴로 굴러가는 자동차와는 다른 점이다. 그런데 비행기 발명가들은 자동차에 날개를 달면 비행기가 되는 줄로 알고 있었다. 자전거 제조업자인 라이트 형제만이 비행기를 자동차가 아니라 하늘을 나는 자전거로 생각했던 것이다. 마치 스필버그의 영화 'E.T.'에서 아이들이 보름달을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몸체도 작고 자전거와 같은 핸들과 페달이 달린 프라이어 호를 만들어 이륙과 비행 시의 좌우 균형을 잡아주는 데 성공한다. 그뿐만 아니라 라이트 형제는 지상 실험을 할 때에도 자전거로 시뮬레이션 장치를 만들어 각종 데이터를 얻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라이트 형제의 이름과 연대를 외우는 교육만 받아 왔던 우리는 최첨단에 속하는 비행기의 발명이 약 150년 전 자전거의 로테크(low-tech)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사실을 모르고 지내온 셈이다. 디지로그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이제부터 가르쳐야 할 것은 모든 사물이나 생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자전거 타기와 같은 균형 컨트롤 기술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라이트 형제의 프라이어 호가 랑그레의 에어드롬기를 이긴 그 충격적인 의미를 밝혀주는 일이다. 랑그레는 정부의 요청에 따라 비행기를 만들려고 했지만(당시 스페인과 전쟁을 시작한 미 육군은 비행기와 같은 신무기가 필요했다) 라이트 형제는 자신의 꿈을 위해 그것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조인(鳥人) 릴리엔탈이 비행 실험을 하다 추락사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그들은 비행연구에 열을 올렸다. 또한 랑그레가 비행 실험을 남에게 맡긴 데 반해 라이트 형제는 목숨을 걸고 직접 자신들이 시험 비행에 나섰던 것도 다른 점이다. 무엇보다도 라이트 형제가 랑그레를 이겼다는 것은 형제애를 바탕으로 한 가족의 작은 조직이 워싱턴 정부의 그 거대한 관료조직을 이겼다는 것이며, 대당 180달러로 판 자전거의 이익금에서 떼낸 개발비용이 국가의 그 거액 투자액을 눌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라이트가 몸으로 익힌 노하우가 뉴컴 교수나 스미스소니언연구소의 탁상 지식을 앞섰다는 점이다.

당대 역사학의 최고 권위자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그 말을 뒤집으면 21세기의 시대적 특성은 그와 반대로 균형의 시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라이트 형제가 미래의 비행기에 자전거 핸들과 페달을 단 것처럼 우리는 현대의 디지털 기술에 주역의 중정(中正), 유교의 중용(中庸), 그리고 도교의 귀유(貴柔)와 같은 사상을 달아야 한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디지털 시대의 키워드인 사이버라는 말이 바로 뱃길의 밸런스를 컨트롤하는 그리스어의 키잡이[操舵手]란 말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05 19:50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