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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of My Life/Digilog

[디지로그시대가온다] 10. 컴퓨터는 셈틀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한국에는 1500만 대의 자동차, 2600만 대로 추산되는 텔레비전이 있다.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는 1600만 대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숫자는 집집에 자동차와 TV, 그리고 PC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문제는 그런 기계들과 매일 함께 살다 보면 그것을 대하는 우리 의식에도 굳은살이 박이고 만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삶의 자동화'라고 불렀고, 그런 일상에서 벗어나 사물을 다시 새롭게 보려는 방법을 '낯설게 하기'(오스트라네니)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당연시하던 하드웨어와 라이브웨어(인간)의 관계를 낯선 외계인이나 옛 조상의 눈으로 보면 전연 다른 의미를 띠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우상시하는 것들이 바보상자로 보일 수도 있다. TV는 몰라도 자동차와 컴퓨터까지 바보상자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옛 조상님의 낯선 시선을 빌리면 다음과 같은 진솔한 담론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이것이 자동차라는 게냐. 백 근도 안 나가는 사람 몸뚱이 하나 옮기자고 이천 근이 넘는 쇳덩어리를 움직여야 하는 이 달구지가 바보상자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그리고 무릇 이 세상 물건은 쥘부채처럼 사람이 부칠 때에는 펴져 있다가도 다 부치고 나면 접히는 법인데 어찌하여 자동차는 사람이 탈 때나 내릴 때나 밤낮 그 모양 그대로인가. 그래서 사람이 마시고 나온 찻값보다도 주차장 찻값(주차료)이 더 비싸게 나오니 어찌 이것이 성한 사람들 짓이라 하겠는가." 그리고 컴퓨터에 대한 준엄한 비판으로 이어질 것이다.

"본시 컴퓨터는 컴퓨트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계산한다는 뜻이라고 들었다. 우리는 계산을 셈이라고 하니 셈틀이 되는 셈이다. 디지털이란 말도 손가락이라는 뜻에서 나왔다 하니 컴퓨터가 계산하는 것도 그 근본은 손가락으로 셈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을 터. 그러나 우리가 셈이라고 할 때에는 손가락셈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속셈도 있다(암산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따금 '그런 셈'이라고 할 때에는 겉계산과 속계산이 다를 경우를 나타내는 말이다.'먹은 셈이다'라고 하면 먹었다는 말인지 먹지 않았다는 말인지 너희 계산으로는 셈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셈에 '치다'라는 동사를 붙이면 실제 일어나지 않은 가상적인 숫자까지를 셈하게 된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속은 셈'치고 아니면 '바보가 된 셈'치고 불편해도 그냥 컴퓨터를 쓰고 있는 줄이나 알아라. 그건 다 덮어두고라도 무어의 법칙대로 반도체 칩은 2년마다 성능이 두 배로 늘어나고, XT니 386이니 하던 인텔의 마이크로 프로세서는 이제 전투기 이름처럼 펜티엄 1이다 2다 하며 하늘 높이 날고 있는데 어째서 자판만은 100년 전 타이프 라이터 그대로인가. 생쥐(마우스) 한 마리 붙여놓은 것밖에 변한 것이라곤 없다. 듣거라. 인간과 컴퓨터 사이를 인터페이스라고 부른다던데 옛말로는 그게 궁합이라는 게 아니더냐. 그런데 컴퓨터는 토끼요, 사람은 거북이니 어찌 이런 궁합으로 백년가약을 누릴 수 있겠는가. 할 말은 많지만 한마디 하고 간다. 이 세상 만물지간에 귀한 것은 사람밖에 없다. 그러니 사람을 컴퓨터에 맞추려 하지 말고 컴퓨터를 사람에 맞추어라. 이 똑똑한 바보들아."

그렇다. 옛날에는 인간을 훈련시켜 기계에 맞추려고 했지만 이제는 기계를 인간에게 맞추는 기술로 변해간다. 유럽의 에르고느믹스, 미국에서 휴먼 팩터라고 부르는 인간공학의 발전이다. 인지과학의 권위자 '보이지 않은 컴퓨터'를 쓴 D A 노먼의 컴퓨터 비판을 들어보면 옛말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는 소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어령 중앙일보사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10 20:19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