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외국의 어느 비평가는 한국의 정치를 롤러코스터에 비유했다. 우리가 청룡열차라고 부르는 유원지의 그 오락용 활주차와 같다는 것이다. 맹렬한 스피드로 곡예를 하듯이 지상에서 하늘로 올라가다가 정상에 이르면 급전직하로 떨어지는 것이 청룡열차의 원리다. 그 비평가는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 하나하나의 예를 들어가면서 그들 모두가 청룡열차와 같은 이미지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올라갈 때의 위풍당당한 모습과 내려올 때의 초라한 모습이 너무나도 대조적이라고 놀라워하기도 한다. 청룡열차의 정치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어서 90% 가까운 지지율의 정상으로부터 20%대로 급락한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도 거론하고 있다.
기분 나쁜 비평이지만 할 말이 없다. 정치만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경제.사회, 그리고 문화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이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분명 청룡열차와 다름이 없다. 벤처기업도 아닌 글로벌 대기업의 총수가 박수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죄인의 얼굴로 돌변하는 것은 다반사이다. 난치병 환자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없던 줄기세포의 영웅도 순식간에 정상에서 나락으로 추락하는 세상이 아닌가.
아시아의 용이라고 칭찬받던 한국의 나라 전체가 금융 환란으로 청룡열차처럼 급하강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죽했으면 한국인들은 IMF를 "아이고, 미치고 환장하겠다"고 불렀겠는가.
그러나 그 비평가에게 우리는 물어봐야 할 말이 있다. "그래 당신의 말이 맞는다고 하자. 하지만 당신 말대로 최고 권력자들이 한 번도 아니고 다섯 번, 여섯 번씩이나 추락했는데도 아직도 한국이 멀쩡하게 살고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가. 어째서 당신네보다도 청룡열차를 타고 지내는 한국인이 더 낫게 살고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가. 그래도 모르겠으면 권력의 정상에서 반세기 넘게 내려앉은 적이 없는 김 부자의 세습 정권밑에서 살고 있는 북한보다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국민들이 더 기 펴고 편안하게 잘 살고 있는지 그 이유를 따져본 적이 있는가.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남들 같으면 한 번의 추락으로도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갔을 터인데 청룡열차를 타고 있던 사람들이나 밖에서 올려다보고 있던 사람들이나 그 얼굴에 아직 절망의 빛이 없으니 이게 웬 까닭인가.
그래 정말 좋은 비유다. 청룡열차의 구조를 모르면 한국인도 모른다. 인간이 타는 승용물 가운데 롤러코스터만큼 불가사의한 것도 없다. 일본에서는 그것을 제트 코스타라고 부르지만 그 차체 안에는 제트는 물론 어떤 동력장치도 달려있지 않다. 핸들도 없고 엄격하게 말해 브레이크 장치도 없다. 순전히 위치 에너지를 동력 에너지로 바꾸어 원심력과 구심력의 밸런스를 통해 애크로배틱하게 움직이고 스피드를 낸다.
그렇다. 한국 정치가 그냥 직선 궤도를 달리는 보통 열차였다면 단 한 번의 충돌과 추락으로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정말 기적 같은 균형감각과 활강의 순발력으로 천 번 만 번 추락해도 새로운 청룡 하나가 내일 다시 그 떨어진 바닥으로부터 다시 솟아오를 것이다. 좌로 쏠리고 우로 부딪쳐도 불안과 공포의 절규는 들려와도 당신네 마음같이 한쪽으로 쏠려 풍비박산하는 법은 결코 없을 것이다.
보수 청룡이라고 부르든 386 청룡이라고 하든 우리가 그 위기와 추락의 격변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결코 훌륭한 정치가나 영민한 경제학자와 과학자가 있어서가 아니다. 한 번도 정상에 올라 본 적 없는 평범한 한국인의 피 속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놀라운 균형감각과 그 순환 의식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롤러코스터의 균형 인자! 두고 보라, 그것이 절대로 공존할 수 없다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두 세계를 극적으로 통합해 이끌어가게 될 한국인의 디지로그 파워다.
이어령 중앙일보사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04 19:5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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