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현대인은 디지털 환경에서도 아날로그 자연환경에서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온라인 게임으로 약시자가 늘고 MP3 플레이어로 난청자가 분다. 수능시험장에는 안경은 기본이고 약시자를 위한 모니터가 따로 설치됐다. 그리고 6세에서 19세 미만의 미국 청소년들 가운데 12.5%가 소음성 난청 증상자라고 한다.
디지털 쓰나미에 대해 속수무책인 것처럼 현대인은 얼마 전 남아시아의 자연 쓰나미에 대해서도 약했다. 푸껫과 몰디브 같은 관광지에서는 수천 명이 참변을 당했지만 안다만.니코바르 군도(群島)의 옹게족 114명 전원은 모두가 고지대로 피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스리랑카 얄라 국립공원의 코끼리.멧돼지.원숭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배가 난파하기 전에 쥐들이 먼저 달아난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들어왔던 상식이다.
쥐 이야기가 나왔으니 컴퓨터의 마우스는 어떤가. 매초 1800만 개의 명령을 실행한다는 인텔리 마우스라도 여전히 곡식을 축내고 대들보를 긁던 옛날의 쥐들처럼 컴퓨터 사용자들을 괴롭힌다. 더블클릭이 힘든 노인이나 화면을 볼 수 없는 신체 장애인들에게는 오히려 손으로 더듬어 칠 수 있는 키보드가 더 고맙다. 미셸 세르가 '파라지드'에서 한 말처럼 역사상 인간은 쥐를 이겨본 적이 없다. 그것을 이기려면 디지털 기술을 한 단계 높여 인간과 기계를 일체화하는 바이오닉스와 손을 잡아야 한다.
아니다. 벌써 그런 시대가 오고 있다. 로지텍사는 바로 지난 9일, 미국 이머전사가 개발한 '햅틱스'(그리스어로 손으로 잡는다의 haptikos에서 온 말) 기술을 채택해 촉감으로 조작하는 마우스를 발매한다고 발표했다. 스크린 위의 포인터가 그 감촉을 마우스에 전달해 웹페이지나 소프트웨어와 물리적인 쌍방향 소통을 할 수 있는 기술이다. 사실 지금까지 편리한 그래픽 프로그램을 놔두고 종이 위에 직접 그림을 그려 컴퓨터에 올리는 '아날로그 동맹자'가 많았다. 그림을 그릴 때 미묘한 손 감각의 터치를 느낄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 감촉 마우스를 사용하면 삼차원의 화상을 묘화하는 데 있어서도 물체의 등고선, 표면의 질감, 그리고 테두리에 닿는 아날로그적 감촉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다. 심지어 작은 파일과 큰 파일을 드래그할 때에도 그 무게의 차이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것을 인터넷 쇼핑에서 이용하면 물건을 손으로 만져보고 살 수가 있다.
이 마우스의 혁명은 인간과 기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일체화를 상징한다. 한마디로 인간이 기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인간의 생체조직에 맞추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그래서 인공부품을 인체조직의 근육, 골격, 신경계와 일체화시킨 바이오 하이브리드의 의지(義肢)가 생겨나고 초소형 카메라를 단 바이오닉 아이(義眼), 그리고 뼈를 통해 소리가 전달되는 휴대전화 등이 생겨나 디지털 쓰나미를 예방한다.
그래서 휴스턴대에 가면 동물원이 아닌데 우스꽝스럽게 걷고 있는 펭귄 새들을 볼 수가 있다. 걸음이 부자유스러운 노인이나 뇌졸중 환자들을 위해 펭귄의 독특한 보행 속에 숨겨진 비밀을 캐내려고 연구가 진행 중이다. 입는 컴퓨터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벌써 일본의 쓰쿠바대에서는 입기만 하면 '6백만 불의 사나이'처럼 인체 기능이 증폭되는 HAL이란 기기가 등장했다. 모두가 고령사회에 대비하려는 준비다.
수천 년 동안 인간에게 페스트를 옮기고 불면의 밤을 주었던 쥐가 디즈니의 미키마우스가 되고 포케몬의 피카추가 되고 또 컴퓨터의 마우스에서 DNA의 특허 생물체 '하버드 마우스'에 이르는 진화를 했다. 이제 디지로그 시대가 오면 문명의 수챗구멍에서 나온 그 음산한 쥐들이 바이오닉스의 웰빙 쥐가 돼 모처럼 인간들을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게 할는지 모른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30 19:1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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