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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of My Life/Digilog

[디지로그시대가온다] 27. 내 손목시계 어디로 갔나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동창(東窓)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의 남구만(南九萬)이 쓴 옛시조는 농경사회의 시간의식을 잘 보여준다. 동창이 시각의 시간이라면 노고지리는 청각의 시간이다. 같은 자연시(自然時)라도 청각적인 시간의 연속성이 훨씬 더 아날로그적이다. 그러나 그 시조가 산업시대로 오면 '학교 종이 땡땡땡'의 동요로 바뀐다. '소 치는 아이'를 '초등학교 학생'으로 바꾸고, '밭갈이'를 교과서의 '글 갈이'로, 시간을 걱정하는 '할아버지'를 '어머니'로 대입하면 완벽한 문명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무엇보다 '노고지리'와 '학교 종'은 아날로그적 시간과 디지털적 시간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노고지리 소리를 듣고 어서 일어나 밭을 갈라는 말과 학교 종소리를 들으며 어서 모이자는 것은 그 의미도, 심리적 강도도 다르다. 노고지리의 시간은 '세월은 유수 같다'는 전통적 표현처럼 물처럼 흐르는 자연시(自然時)다. 확실한 경계선을 표시할 수 없는 '무수치(無數値)'로 표현되는 시간이다. 소 치는 아이는 조금 늦장을 부려도 별 지장이 없다. 혼자 하는 밭갈이는 얼마든지 시간을 자신에게 맞춰서 일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 종은 사정이 다르다. 이미 '땡땡땡'이란 말에서도 드러나 있듯이 그것은 이산적(離散的)인 단위의 수치로 표현되는 기계시(機械時)다. 급행열차의 시간표처럼 분초 단위로 금을 긋기 때문에 잘못하면 일 초 차이로 교문이 닫히고 지각생이 될 수도 있다. '어서 모이자'라는 말 역시 시간은 한날, 한시, 한곳에 모이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야 공부도 하고 일도 한다.

무엇을 배우느냐보다도 어떻게 모이는가를 가르쳐 주는 곳이 학교다. 한번 외우면 그만인 구구단과 달라서 학교를 모두 마친 뒤에도 '학교 종'은 '회사 종'이 되고, '회사 종'은 '사회 종'이 된다. '우리를 기다리신다'는 그 선생님은 새벽 교회당에도 있고, 공장 문에도 있고, 모든 역 모든 거리의 문 앞에도 있다. "얘야, 학교 늦을라"의 어머니 소리는 어렸을 때 듣던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밤 12시, 자정에서 일 초만 넘겨도 마법의 마차는 호박이 되고 백마는 쥐가 되고 신데렐라의 옷은 누더기로 변할 것이다. 요술쟁이 노파가 힘을 쓰는 그 옛날에 대체 무슨 놈의 시계가 그것도 분초를 따지는 정확한 시계가 있었다고 신데렐라는 허둥지둥 나오다가 유리구두까지 벗겨져야 했는가. 모든 것을 양자화(量子化)하는 디지털 시계처럼 유리구두 역시 한 치의 에누리도 없이 투명하다. 그러고 보면 신데렐라의 판타지는 컨베이어 벨트의 작업라인에서 시간에 쫓기며 일하는 여성 근로자의 예고편이었던 것이다.

아날로그의 시간이 디지털 시간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은 개인 노동에서 집단 노동으로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시간에 먹고 기도하고 잠자야 하는 수도원의 생활에서 기계 시계가 처음 발명됐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도시 전체가 듣는 교회당 시계탑이 괘종시계가 되어 가정 안으로 들어오고 그것이 탁상시계가 되어 방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회중시계로 작아지면서 개인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온다. 이윽고 오늘날 같은 팔목시계가 되면 사회의 노동과 생활양식도 집단에서 개인으로 옮겨진다.

컴퓨터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집단이 함께 모여 작업하는 대형 메인프레임은 회사의 워크스테이션으로 변하고 그것이 데스크톱 PC가 되면서 집으로 들어온다. 다시 노트북 컴퓨터가 작아지면서 개인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모바일, PDA로 줄어든다. 거기에서 다시 휴대전화 세상이 되면 아예 내 손목시계는 사라지고 만다. 사회도 함께 변해서 출근시간도 개인에 따라서 제가끔 달라지는 플렉스 타임이 적용되고 시차근무제가 실시된다. 그리고 주5일제가 되어 아침에는 때때로 노고지리 우짖는 시간이 온다.

정말 그렇다. 노고지리도 학교 종도 아니다. 디지로그의 시간은 백마를 탄 왕자의 말발굽 소리처럼 온다. '빨리빨리'의 디지털사회는 업그레이드돼 오직 한 사람의 발에만 맞는 외짝 유리구두가 주인을 찾아오는 '온리 원'의 시대가 온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 바로잡습니다

2월 1일자 3면 '내 손목시계 어디로 갔나 디지털 사회 업그레이드'제하의 기사 중 빠진 글자가 있었습니다. 본문 "확실한 경계선을 표시할 수 없는'무수(無數値)'로 표현되는 시간이다"중 '무수'는 '무수치'가 맞습니다.


2006.01.31 19:30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