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휴대전화가 없었을 때에는 집안식구 전체가 전화 한 대를 놓고 썼다. 그래서 아버지가 누구와 골프를 쳤는지 어머니가 누구와 계모임을 했는지 전화를 건네드리다가 자연스럽게 정보를 얻는다. 부모들 역시 아이들이 누구와 사귀고 무엇을 하고 노는지도 안다. 하지만 휴대전화가 생기고부터는 그러한 소통이 어려워진다. 각자가 자기 전화를 쓰고 받기 때문이다. 그것이 '등장 밑이 어두운' 정보시대의 패러독스다. 심한 경우에는 가족을 쪼개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이탈리아 최대의 사립탐정 회사 '톰폰지 인베스티게인션스'는 배우자에게 외도가 발각된 사례의 87%가 휴대전화 때문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했다. 여름 휴가가 끝나는 9~10월에 이혼이 급증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이혼 전문 변호사들에 따르면 이 기간 이혼율이 30%나 급증하는 것은 가족들과 휴가 중에 은밀한 휴대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날리다가 생긴 일이라고 한다.
휴대전화는 사공간(私空間)을 낳고 그것이 공공간(公空間)을 위협한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수능시험 부정이 대표적인 예다. 지하철 휴대전화가 논란이 되는 것도 흔히 내세우는 소음에 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지하철 소음은 그보다 몇 배나 크기 때문이다. 때로는 휴대전화의 전파가 심장박동조절기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를 드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 역시 과장된 주장이다. 진짜 이유는 공공장소를 침범한 사적 공간에 대한 혐오감이다. 일본의 여고생들은 지하철 객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남학생들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에서 태연하게 앉아 도시락을 먹기도 한다. 한마디로 휴대전화가 생기고부터 애나 어른이나 공공 공간과 사공간을 구별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실제 사회 조사에서도 과거에는 엘리베이터에서 친구와 사담을 나누다가 낯선 사람이 타면 대화를 중단한다는 편이 더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그냥 대화를 계속한다는 쪽이 더 많아졌다.
일본만이 아니다. 왕자병.공주병에 걸린 한국의 젊은이나 분청(憤靑)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젊은이도 똑같다. 그 공통점은 오냐오냐하고 기른 아이들은 나이가 들어도 사회화와 자기 객관화가 안 된다는 사실이다. 어릴 적 죽마를 타고 놀던 아이들은 크면 자연히 헤어지고 새 친구와 만나는 법인데 휴대전화는 한번 단축키에 친구를 입력시키면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기 때문에 계속 교유관계가 지속된다. 그래서 성장해도 새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한 증후군을 일본의 한 연구가는 '휴대전화를 든 원숭이'라고 불렀다. 휴대전화의 독특한 사공간 속에 만들어진 집단은 일본 원숭이들의 행태와 너무나도 유사하다는 것이다.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휴대전화에 의해 패럴렐 리얼리티(한 사람이 두 개의 다른 공간 속에서 동시에 살아가는 것) 속에 살게 됐다. 그래서 때로는 휴대전화의 사공간과 사회의 공적 공간이 충돌하거나 단절된다. 공공 공간이나 공론(公論)이라는 것이 날로 사공간에 먹혀 간다. 휴대전화 때문에 아이들의 소통력은 늘었지만 학력은 저하됐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체체라는 젊은 교사가 휴대전화를 이용해 전교 꼴찌의 불량 학급을 최우수반으로 바꿔놓은 기적 같은 사례에서 그 반대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그 교사는 문자 메시지로 매일같이 학생 하나하나에게 그날 배운 내용들을 퀴즈 문제로 만들어 보내놓고 답신을 받았다. 그냥 숙제를 내면 응하지 않았을 문제 학생들도 일대일의 문자 메시지 사신(私信)에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족 공동체를 붕괴시킨 바로 그 휴대전화의 사공간의 힘을 이용해 교실에 공공 공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사제 간의 사적 관계를 만들어 간 것이다. 디지로그 파워란 이렇게 휴대전화의 사적 공간과 사회적인 공공 공간을 잘 조화시키고 융합해 제3의 창조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힘인 것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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