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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of My Life/Digilog

[디지로그시대가온다] 20. 공명실 속의 인터넷 헐크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누구나 어렸을 때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큰 독이나 목욕탕 속에서 노래를 부르면 갑자기 자기 목소리가 크게 울리면서 도밍고나 파바로티 같은 성악가가 된 느낌을 받는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이 같은 에코 체임버(공명실) 효과라고 부르는 환각작용이 일어난다.


'구글'의 검색에서 와일드카드로 '*사모'라고 치면 34만8000개의 검색 결과가 뜬다. 물론 중복된 항목과 한자말의 사모(思慕)까지 합쳐진 숫자를 감안한다 해도 코드 맞는 사람들끼리의 인터넷 모임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보여준다. 이제는 연설문이나 광고문에서 '강호제현!''사천만 동포'라는 그 구식 정형구가 사라진 것을 보더라도 우리는 이미 수많은 분극화(세그먼트) 사회로 접어들고 있음을 안다.

실상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 혹은 무슨 일인가 좋아서 모인다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이론상으로 봐도 인터넷 공간은 얼마든지 낯을 모르는 사람, 의견이 서로 다른 사람과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특성 때문에 정보의 홍수 현상이 일어나고 익사 직전의 개인들은 '나'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밀폐된 '노아의 방주' 속으로 들어간다. 그 때문에 인터넷 공간은 장독 같은 좁은 공명실로 바뀐다. 환청 속에서 개인은 점점 비대화.극대화하고 과격해지면서 자기가 아는 세계로만 쏠리게 된다.

현실에서 듣던 진짜 자기 목소리는 멀어지고 대신 명가수가 된 것 같은 환상의 목소리가 자신을 지배한다. 거기에서 타자와의 상호이해가 전연 불가능한 분극화의 디지털 집단이 탄생한다. 그러한 사이버 집단은 종래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서 볼 수 있는 몸(자신)-가족(기업.사회)-나라-천하(세계)의 차례로 일관되게 발전해 가는 전통적인 공동체와는 전연 다른 성격을 띠게 된다.

무명의 레슬러 출신 벤추러가 3000명의 제시 네트(우리로 말하면 '벤사모') 그룹의 인터넷 힘으로 미네소타 주지사 선거전에서 막강한 공화.민주 양당의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됐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전자 민주주의의 앞날에 막힐 것이 없다"고 낙관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명실 효과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캐스 R 선스틴과 같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인터넷은 민주주의 편인가 적인가?

정치적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 같은 의견을 주고받고 확신하고 앵무새처럼 공명(共鳴)의 메아리를 반복하다 보면 그 목청은 점점 커지고 과격해져서 주위로부터 고립되고 만다. 예상치 않던 기회와 우연한 접촉에 의해서 광범위한 공통의 체험을 쌓아가고, 의견이 다른 타자의 다양한 생각을 수용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시스템이다. 자기 입맛에만 맞는 정보만을 증폭시켜 주는 공명실 안에서는 그런 우연한 접촉의 기회가 일어나기 어렵다. 그 결과로 중상.모략.비방.명예훼손 등 온갖 악성 루머와 괴담이 걸러지지 않은 채 헐크처럼 커져 현실 밖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요즘 유행하는 '넷심'이라는 여론이다.

그래서 추돌사고를 낸 티코의 젊은이가 "나 네티즌이야"라고 하자 큰 차에 타고 있던 정부 요인이 운전기사를 떠밀고 나와 "미처 몰라뵈었습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는 티코 시리즈 농담 신 버전도 생겨났다. 인터넷 게시판에 오르는 심판은 방청객만 있고 변호사도, 판사도 없는 단심제의 법정과도 같은 것이니 무서워할 만도 하다.

인터넷은 민주주의의 후원자인가 적인가. 그것은 SHELL 법칙(9회 참조)대로 인터넷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에 작용하는 라이브웨어(인간)의 성격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22 20:00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