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은 디지털 정보시대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인터넷 정보의 바다에선 구슬(DB)은 '꿰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해일속(滄海一粟)이란 말 그대로 구슬보다 작은 좁쌀 알을 찾아내는 검색시장에서 패권을 잡은 것이 그 유명한 '구글'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구글이 한국에 오면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처럼 되고 만다. 미국에서는 인터넷 사용자의 39.8%를 차지하고 있다는데 한국에서의 검색시장 점유율은 겨우 1.6%다. 한국 토종 1위 네이버의 68.72%에 비하면 턱도 없는 숫자다(코리안 클릭 조사 2005년 12월 기준).
물론 숫자만 가지고 단순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네이버의 경쟁력은 검색엔진의 기술이 아니라 그 문화 마인드에 있다는 사실이다. '검색'이라 하면 구글이나 야후처럼 이미 인터넷 웹 페이지에 있는 자료(DB)들을 찾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네이버는 '있는 정보를 찾아 주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만들어 주는' 검색 방식을 택한다. 한글 DB는 영어로 된 자료에 비해 빈약하다. 그래서 이미 존재하는 콘텐트에 의존하기보다 사용자들이 서로 질문하고 답변하면서 만들어가는 맞춤식 대화형의 '지식IN' 같은 DB 생성 프로젝트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H G 웰스의 '세계의 뇌'(16회 참조)를 닮은 백과사전이 생겨나 분초 단위로 증식하면서 지식정보의 화수분 단지 노릇을 한다. 하루 평균 질문이 3만5000건, 답변이 6만5000건이라는 경이적인 숫자 뒤에는 남을 가르쳐 주고 싶어하는 한국인의 독특한 지식 풍토도 가세하고 있다. '무식하다'는 게 욕이 되고 '무식이 죄'가 되는 선비의 나라에선 4000만 명이 다 선생이 되고 비평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다. 더구나 익명사회의 인터넷 세상에서는 얼굴을 가릴 필요 없이 당당하게 무식한 질문을 할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다. 그래서 오늘의 지식인은 밖(out)에서 지식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지식 안(in)에 들어와 그것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지식in(人)이 된다. 그것은 편집자가 항목(엔트리)을 정하고 권위자에게 의뢰해 집필을 하는 브리태니커형도 아니며 같은 개방 참여형이면서도 정답만을 올려 한 치의 오류라도 생기면 웹 전체가 발칵 벌집이 되는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와도 다르다.
그 자원과 원천 기술은 한국의 품앗이나 계 모임처럼 서로 돌려가며 지식 재산을 모으고 공유하는 한국 전통 문화에서 온 것이다. 한마디로 IT를 RT(3회 참조)로 발전시킨 한국형 젓가락 네트워크의 산물이다. 그래서 아는 체하거나 틀린 대답을 해도 흉이 아니다. 틀린 답도 정보다. 때로는 그것이 맞는 정답보다 더 재미있고 요긴하게 쓰일 때도 많다. 네트워커들은 게임감각으로 여러 답 가운데 가장 잘 맞힌 답을 골라내 점수를 얻는다.
다른 나라에서는 필요 없는 국물은 단무지처럼 씻어 내버린다. 이를 테면 필터링 기술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국물을 그대로 두어 빡빡하지 않은 음식 맛을 낸다. 그래서 "국물도 없다"는 말은 욕이다. 틀린 대답도 삭제하지 않고 그냥 놔두어 그 빡빡한 인터넷 공간에 인간미를 돋운다. "전화 말고 휴대전화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무려 1300여 개의 해답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가 지금 정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다원적이며 복합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한 가지 코드밖에 모르는 사람들보다 얼마나 똑똑한 백과사전인가.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 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 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2006.01.20 19:2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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