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님이 기고하신 디지로그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였습니다.
인터넷의 선조가 한국이라고 하면 아무리 국수주의라고 해도 웃을 것이다. 그러나 농담이 아니다. 어느 칼럼니스트의 말대로 "한국의 유통구조는 유럽처럼 수요자가 상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인이 수요자를 찾아가는" 형이다. "등짐.봇짐 장수가 소금이며 새우젓이며 메밀묵이며 박물들을 지고 이고 메고 이 마을 저 마을 가가호호"를 찾아다닌다. 주문도 받고 배달도 해준다.
거의 100년 전 폴 발레리는 "물.가스.전류가 집집으로 배송되는 것처럼 앞으로는 아주 작은 신호 같은 조작만으로 동화상이나 소리를 전달받아 그것을 마음대로 붙이고 떼고 지울 수가 있게 될 것"이라고 오늘의 인터넷 사회를 예견했다. 시인의 그 예리한 통찰력은 인터넷의 본질이 수요자가 상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상인이 수요자를 찾는 배달문화라는 사실을 꿰뚫어 본 것이다. 그러기에 정보시대의 기둥 인텔이 내세운 기업모토 역시 "인텔은 배달한다(Intel Delivers)"였다.
한국의 시루떡 돌리기(2회)에서 인터넷의 정보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면 소금장수형 상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앞으로 사람들은 집안에서 쇼핑도 하고 비즈니스도 하는 디지토피어가 온다"고 목청을 높였던 미래학자들이 줄줄이 망신을 당하게 된 이유도 그 점에 있다. 광케이블의 빛의 속도를 타고 정보를 운반하는 인터넷이 설마하니 여우에게 홀려가며 외딴 산길을 찾아다니는 소금장수가 되리라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주문은 디지털로 하고 물건은 아날로그 경로로 배달되는 것이 인터넷 홈쇼핑의 본얼굴이다. '아마존 닷컴' 기업이 100년 적자에 시달리는 것도 의자 주문은 초 단위로 받고 그것을 싸는 데는 시(時) 단위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반은 19세기보다도 못한 주(週) 단위다. 바로 앞 가게에서 사오면 되는 물건을 천리 길을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 바로 첨단 정보화시대의 진귀한 유통구조다. 이것이 여우에 홀린 소금장수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택배, 퀵서비스, 심부름센터의 오토바이, 밴, 화물트럭들이 메토카르페의 법칙에 따라 길을 가로막는 고지라로 변한다.
이러한 인터넷의 부담과 위기에서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주문은 디지털로 하고, 물건은 아날로그로 근처 편의점에서 찾아가는 디지로그식 쇼핑 방식이다. 이 비즈니스 모델 덕분에 경쟁 업종 간에 윈-윈 전략이 생겨나고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이 하나가 되는 코피티션(copetition)이라는 경영학 신술어가 탄생한다.
그리고 미래학자들의 예상과 달리 분산되었던 교외 생활자들이 도심지로 U턴하는 컴팩시티의 21세기형 주거 생활양식이 태어나고 있다. 디지털 공간에서 상실한 거리감을 되찾자는 게다. 시간과 돈을 길거리에 뿌리고 다녔던 유목적 삶은 다시 산골 두메의 정주형 감각으로 전향된다. 아이들의 교육에서 주부들 쇼핑 가족의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아버지의 직장까지 올인원으로 한 정주 공간에 붙어 있는 컴팩시티, -옛날의 촌락 공동체처럼 생활의 활력이 살아나고 지속가능한 삶의 공간이 된다. 21세기 네오 노마드의 유목적 삶을 예언했던 자크 아탈리를 울리는 대목이다.
먼 미래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런던의 밀레니엄 돔을 설계했던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72)가 여의도에 70층짜리 쌍둥이 빌딩 파크 윈을 설계하면서 이런 꿈을 담는다. "사무용 빌딩과 호텔과 쇼핑몰이 한데 모여 있습니다. 일은 물론이고 다양한 여가활동까지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복합용도개발'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활동을 한곳에서 즐길 수 있는 집적도시(compact city)형이므로 교통량을 유발하지 않는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소금장수의 배달문화가 만든 디지로그 문화 공간이 우리 눈앞에 성큼 다가온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디지로그라는 말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하나로 합친 말입니다. 지금까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함께 합친 시계를 부분적으로 '디지아나'라고 부르거나 디지털 다이얼로그의 뜻으로 디지로그란 말을 이따금 사용해 온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기술용어에서 벗어나 정보문화의 신개념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brick), 가상현실과 실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IT와 함께 대두된 이항 대립체계를 해체해 신개념을 구축하게 될 이 연재는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후기 정보사회의 밝은 미래를 모색하는 비판과 희망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가 만든 키워드나 슬로건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신바람 문화''신한국인', 서울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를 비롯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새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 등이 있습니다
다음회는 '벽을 넘어서 - 번개 미팅'입니다
*** 바로잡습니다
1월 16일자 3면 '디지로그 시대가 온다' 기사 가운데 "그리고 운반은 19세기보다도 못한 주(周) 단위다"에서 한자가 잘못 표기되었습니다. 1주일을 뜻하는 '週'가 맞습니다. 또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의 합성어는 '쿠피테이션'이 아니라 '코피티션(copetition)'이 정확한 용어입니다.
2006.01.15 19:2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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